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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고종은 초대 총독을 덕수궁으로 불러서 직접 덕혜를 소개시켜준다"라고 밝혔답니다. 일본 궁내성에 상신을 거쳐 옹주(翁主)의 존칭(尊稱)을 이때부터 사용하게 되었다. 보름만 있다 다시 올거라는 복순은 한달이 넘어도 소식이 없게 됩니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를 모신 영원(英園), 영친왕의 아들인 이구(李玖)의 회인원(懷仁園), 그리고 덕혜옹주 묘와 의친왕 묘다. 귀인 양씨 (1882~1929) 고종의 후궁으로 덕혜옹주의 생모이다. 커버린 덕혜옹주를 오랜만에 보고 남긴 기록에는 옹주는 미소조차 띠지 않았다고 남겼습니다. 이에 고종은 초대 총독을 불러 덕혜를 대면시킨 후 입적되었다. 어린 속국의 옹주가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었겠냐만은~ 개인적으로 인상에 남는 건 입국심사를 거부당한 덕혜 앞에 한택수(윤제문)가 등장한 장면이었다. 그곳에 가서야 고종과 명성왕후, 그리고 조선의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의 역사가 흐르고 있는 곳이란 걸 알알았다. 당시 히노데 소학교는 일본인 자제들이 다니는 학교였으며 조선인은 고관의 자재 일부가 다녔던 학교였다. 일본에서 덕혜옹주를 만난 영친왕 그는 180도 변한 옹주는 보고 깜짝 놀랍니다.

 

 

일년 뒤인 1956년 덕혜공주의 딸 마사에는 자살 하겠다는 유서만 남긴 채 산에서 실종되었다. 조선의 황녀로서도, 다케유키의 아내로도, 정혜의 어머니로도, 그녀는 그 무엇으로도 남지 못했다. 덕혜옹주는 왕족에 입적했지만, 그게 비운의 시작이었답니다. 이번에 다녀온 곳은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본에서 옹주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소식을 듣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올 해 한국영화 여름 라인업 빅5 중에 가장 관심이 덜했던 것이 <덕혜옹주>였습니다. 이윽고 옹주가 좋아하는 사이다를 사온 장한이 옹주와 담소를 나누며 영화가 끝으로 결말을 맺는다. 영화 <덕혜옹주>에서 본 건물과 비슷한 건물이 도쿄에 있다. 참, 공주가 아닌 ‘옹주’라 부르는 이유는 후궁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덕혜옹주가 누구요? 김을한 : 조선의 마지막 왕녀입니다. 하다 못해 덕혜와 정략결혼한 일본인 다케유키마저도 안쓰럽다. 옹주에게, 양 귀인은 처음으로 덕혜라고 불러주며 귀환을 환영한다. 손예진이 주연으로 나오는 덕혜옹주 영화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에 대한 이야기를 볼 수 있고 역사를 공부 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내성적이며 인내심이 강한 덕혜는 매몰차게 묻고, 질문하는 이들 앞에서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덕혜옹주 (1912-1989) 1912년 5월 25일, 황제 자리에 물러나 있던 고종은 말년에 기쁨을 누립니다. 딸을 위해 덕수궁에 황실 최초의 유치원을 만들기도 했고, 조선총독부 총독이었던 데라우치에게 "이 아이가 내 딸이다"면서 황적에 올릴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덕혜옹주'는 고종황제의 늦둥이라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자라왔습니다. 2016년에 개봉하여 약 5년정도 지난 영화이고 누적관객수는 550만정도를 기록한, 흥행에 성공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고종은 초대 총독을 덕수궁으로 불러서 직접 덕혜를 소개시켜준다"라고 밝혔다. 덕혜옹주와 '소 다케유키'는 일본에 의해 강제로 정략결혼을 하게 되고, 결혼 1년 후 둘은 딸을 얻습니다. 선을 넘는 녀석들 프로그램 중 덕혜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왕조종가 결혼 봉축기념비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대마도는 꽤 매력적인 관광지입니다. 특히 이방자여사는 천진난만했던 아이에게 말이 없는 옹주의 모습이 너무나 이상했다고 합니다. (좌) 일본 백작 소 다케유키 (우) 덕혜옹주 덕혜는 결혼 후 조현병에 시달렸습니다.

 

 

일본인 남편은 1946년 정신병원으로 덕혜를 옮겼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왕녀 덕혜옹주의 비극사가 '선을 넘는 녀석들'을 통해 공개됐다. 덕혜옹주(손예진)는 고종의 딸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입니다. 되자 옹주는 1921년 5월 '덕혜'라는 이름으로 황적으로 오르며 일본으로 가야 했다. 덕혜옹주는 모자를 벗고 일본어로 연설하는 것을 멈추고 조선말로 연설을 다시 시작합니다. 조선의 마지막 옹주, 덕혜옹주를 연기한 손언니 이 영화 보다가 진짜 민족의 아픈 역사 만큼이나 덕혜옹주의 인생 자체도 너무 안타까워서 마음이 참 먹먹했더랬다. 숙선옹주의 태를 주합루 북쪽 돌계단에 묻은 것 역시 이에 속한다. 대마도에서 우리나라 공주의 결혼 축하 비석을 보니 신기했습니다. 대마도에 갔을 때는 덕혜옹주 기념비도 찾아갔다”며, 발로 뛰는 행동파 역사 찐팬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고 합니다. 다들 아실 내용이지만 대마도는 슬픔이 있는 덕혜옹주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소 다케유키는 영친왕과의 협의하에 55년 덕혜옹주와 이혼 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몄다. "저는 조선의 옹주 이덕혜입니다" "우리에겐 돌아갈 고향이 있습니다. 복권과 옹주의 귀국을 허락해 달라 요구하는 무모한 시도 끝에 허락을 받아 귀국을 추진하게 된다.

 

 

덕혜옹주의 삶이 어린 시절 부터 정주행 되는 메인 이야기로 구성된다. 영화를 소개하기에 앞서 옹주? 공주아닌가? 옹주가뭘까? 라는 생각을 가진분들이 있으실것같은데요~ 옹주란? 왕의 후궁의 딸이라는 뜻입니다. 덕혜옹주 묘 고종과 귀인 양씨의 딸로 1912년에 덕수궁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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